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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s in JUNE/Cultural life | 문화 생활

[전시회 | 황금광 시대] 1930년 경성 속에 젖어들다. (일민미술관 / 재밌는 전시회 추천)

by KKU_JUNE 2020.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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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 이름: 황금광 시대
- 장르: 근대 한국사 + 체험형 전시
- 위치: 일민미술관 (광화문역 5번출구)
- 전시 일정 / 다녀온 일자: 2020.10.8 -2020.12.27
- 키워드: #이색전시회 #재밌는전시회 #VR전시회 #구보씨의일일을체험하다 #역사전시회 #외국친구데려가기좋은전시회

 


독일인 친구와 함께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황금광 시대'라는 전시회를 다녀왔다.

 

1920년대 동아일보 사옥이었던 일민미술관 전경

황금광 시대.

이 단어는 '노다지' 정도의 키워드만을 떠올릴 수 있던 나는 별 생각 없이 전시회 티켓을 끊었다.

 

나는 전시회나 박물관을 다닐 때 미리 찾아보는 것 보다는 아무런 지식 없이 가서 하나하나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전시회 장르가 내가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분야의 전시회라 항상 재밌는 교양 수업을 들으러 가는 마음으로 다니곤 한다. 어차피 팜플렛이나 벽에 쓰인 설명에 정말 하나하나 세세하게 다 적혀있으니까!

---베짱이의 변명

 


 

- 1920년 식민지 경성의 지워진 꿈, 2020년 우리에게 찾아오다.

 

5 Scene
#1: 유일한 휴양처, 안락의 호-옴 MIOON <픽션 픽션 논픽션; Fiction Fiction Nonfiction>
#2: 뉴-씨어터: 이양희 <클럽 그로칼랭>
#3: 신여성 편집실: 조선희 <세 여자>
#4: 자유와 검열의 경계에서: 권하윤 <구보, 경성 방랑>
#5: 수장고의 기억: 일민 컬렉션

 

 

 


# Scene 1: 픽션 픽션 논픽션 Fiction Fiction Nonfiction

해당 전시는 정각/30분에만 입장할 수 있어서, 나와 내 친구는 다른 전시를 본 후에 마지막으로 이 전시를 봤다.

순서는 딱히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각자 헤드폰을 하나씩 쓰고 입장하게 되는데, 어두운 전시관 안에 LED조명이 설치된 철제 프레임이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 (MIOON)에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경성의 건축가들과 건축물들 사이에 담긴 근대 유토피아와 그 속의 삶이 재조명된다.

 

철제 프레임은 신여성 윤성덕이 거주하던 문화주택과 그녀의 삶을 신체적으로 구조화 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브로슈어의 설명이고, 사실 나에게는 건물을 미니멀리즘으로 표현한 것 정로도 느껴졌다.)

 

헤드폰을 통해 두 사람의 대화가 흘러나오며 전시가 시작된다.

 

해당 대화는 1933년 잡지 <신여성>에 기고된 피아니스트 윤성덕과 인터뷰어의 대화라고 한다.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이것이 실제 100년 전 인터뷰인지, 혹은 지금의 <행복이 가득한 집>에 실린 대화인지 명확히 분간할 수 없다. 다만 대화를 통해 해당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의 취향, 삶의 방식, 그리고 당시의 문화적인 관점을 추적하며 소리와 빛의 움직임을 감지할 뿐이다.

 

철제 프레임은 이와 동일한 구조를 지녔다. 다만 정말 직선으로 이루어진 프레임일 뿐이다.

 

 

 

 

 

 

 

 

 

 

 

 

 

 

 

 

 

 

 

대화의 내용이 하나하나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헤드폰에서 울려오는 조용한 발걸음과 독백을 통해 주택의 구조를 상상해 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분명 까만 철제 프레임 뿐이었는데, 인터뷰어의 목소리를 들으며 걷는 나는 분명 유럽과 일본, 한국의 문화가 어우러진 1930년대의 주택을 거닐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나 뿐 아니라 독일인 친구 역시)

집을 떠나면서 노을을 바라보는, 조용히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속 발걸음을 옮기는 부분이 마음에 남는다.

 

내가 전시의 의도를 모두 파악했는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미디어 아트와 많은 예술적인 요소들은 나에게 어렵고 멀기도 하다. 다만 100년 가까이 지난 오늘을 사는 내가 당시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따는 것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경험이었다.

 


#Scene 2: 뉴-씨어터: 이양희 <클럽 그로칼랭>

 

안무가 이양희의 가상 카바레 공간.

'그로칼랭'의 의미는 '열렬한 포옹'이라는 뜻으로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의 가명으로 쓴 소설의 제목이라고 한다.

 

 

'전통 속에서 삭제된 동시대성'에 대한 질문을 통해 한국 춤의 근본적 속성과 태도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해 온 이양희는 100년 전 종로 중심지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대화하고 교감을 나누던 사교모임, 살롱을 재현한 가상의 카바레에서 관람자가 능동적/상호적으로 향유하는 새로운 공연예술, 뉴 씨어터를 선보인다.

( - 브로슈어 설명 中)

 

관객들은 벽면에 쏘이는 빔 프로젝트를 통해 안무가 이양희가 하얀 연습실 같은 공간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관람하게 된다. 이양희 안무가는 소복같은, 단촐한 흰 드레스만을 입고 흰 공간에서 한국 무용을 춘다.

 

사실 브로슈어에 적인 장황한 의미를 모두 느끼진 못했다. 사교모임와 살롱을 재현했다던가, 종로 중심지의 자유롭고 평등한 대화....등을 느끼기에는 내가 무용을 바라보는 시야가 아직 좁은 것 같다. (자매품으로 현대미술 역시 아직 어렵다)

 

다만 내가 '한국 무용'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떠올리는, 화려한 한복과 탈춤 출 때 쓰는 흰 천이 나풀거리는 궁중 무용과는 달리, 조촐할 정도로 단순한 공간과 의상 속에서 손짓 하나, 발짓 하나로 끊임없이 한국의 무용을 표현해 내는 안무가가 대단해 보였다. 

 

내가 다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전통 속에서 삭제된 동시대성'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우리의 세상 속에서 점점사라져가는 한국 무용과 한국의 것들을 살리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안무가의 손짓 하나하나에 담겨있다고 느껴졌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모든 동작과 움직임 하나하나하가 한국의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Scene 3: 신여성 편집실: 조선희 <세 여자>

 

>> 타자기 체험 코너가 있어요! 짱 재미씀 타이핑 쳐서 가져갈 수도 있음 완전 짱짱예쁨

 

3번째 씬에서는 1920년대 3명의 페미니스트 신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세 여자>의 작가 조선희의 전시이다.

<신여성 편집실>이라는 주제로 구성된 전시관은 1920년대 소설과 조선희가 기록과 기록 사이의 개연성에 상상력을 채워 복원된 버려진 역사이다.

 

- 조선 공산당의 여성 트로이카 -

동아일보사 최초의 여기자, 잡지 <신여성>의 편집장이었던 허정숙,

박헌영의 부인으로 조선여성동우회와 근우회 활동을 하며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여성 해방 운동가였던 주세죽,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재건운동 및 해방 후 좌익 부녀운동에 참여한 여성 사회주의자 고명자

 

 

1920년대 실제 발행된 신문들이 전시되어 있다.

"치운요새에 감기에 주의하자"

 

국어 교과서에서나 '근대 국어' 등의 이름으로 배우던 옛 우리말로 빼곡한 신문을 보니 괜시리 웃음이 나왔고,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잇는 일본어는 쓰라린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전시관이 작은데 구석구석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했다.

벽면에는 행동강령들이 적혀앴었고, 전시관 한 가운데에는 공장에서 인쇄되고 있는 듯한 신문이 걸려있었다.

벽면을 따라 당시 편집실에 정말 있었던 것 같은 낡은 물건들과 <세 여자> 소설이 탁상에 놓여있었다.

 

 

'너 뭔가 오늘 옷이 신여성같아!' 라며 쉽게 올린 그 단어가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책임감으로 다가왔을지 괜히 부끄러워지는 비장한 문장이다.

 

현재 오늘날 신여성은 어떤 여성상을 의미하며, 신여성 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인간상은 무엇인가.

 

 

 

 

 

 

 

 

 

 

 

 

 

 

 

실제로 타자를 쳐서 그 종이를 가져갈 수 있는 타자기 체험 코너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다.

실제 타자기로 타이핑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겠나 싶다.

종이를 돌돌 말아서 묶을 수 있는 노끈까지 준비되어 있는 걸 보면, 이 코너를 기획하신 분은 나 같은 사람의 감성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신 것 같다.

 

타자기 체험을 하면서 정말 재밌고, 너무너무 맘에 들었다. 탕탕 소리도, 줄을 바꾸려 끽 하고 꺽쇠를 미는 것도 최고였다.

 

위에 있는 종이는 독일인 친구가 쓴 내용이다. 어머니가 보고싶어요라니ㅜㅜㅜ 귀여워

받침을 쓰는 방법이 생각보다 복잡했다. 조금 익숙해지고 나니 자신감이 생겨서 빨리 쳐보다가 몇 번이나 틀려서 종이를 찢어내고 다시 쓰곤 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쿼티 자판이 일부러 비효율성을 최고조로 높여 제작한 자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주 쓰는 자음과 모음들의 거리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고, 한 자 한 자 칠 때 신중하게 쳐서 틀릴 확률을 낮추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타자기를 쳐 보니 필요성을 여실히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Scene 4: 자유와 검열의 경계에서: 권하윤 <구보, 경성 방랑>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구보씨의 일일'을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배우면서 읽은 작품이라, 나는 아직도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의식의 흐름 이야기를 할 때면 구보씨를 떠올리곤 했다. 

 

꽤 지루한 작품이었고, 그냥 정말 목적없이 서울 거리를 떠돌던 한 아저씨의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의식의 흐름 기법'과 관련된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번 읽어서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전시는 VR로 진행되는 전시였는데, 정말 이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부족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1930년의 경성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한다기에, 설렜다.

VR이라기에 진짜 현실 같은 경성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반전으로 당시 '만문만화'의 캐리커쳐로 표현된 경성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이었다. 만문만화는 1930년대의 도시 풍경을 주 내용으로 다루는 만화 장르로, 1924년 언론탄압이 시작되면서 시사만화가 거의 다 사라지면서 등장했다. 만문만화속 캐릭터들은 당시의 가난과 구시대적인 한국사회의 단면을 조롱했다.

 

 

많은 VR체험을 해 봤는데, 이런 VR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신기하고 멋졌다.

 

이런 그림체로 VR속 세상이 펼쳐진다.

구보씨의 일일의 나레이션을 따라 만문만화가 펼쳐진다.

 

구보씨가 전철을 타는 장면에서는, 나 역시 VR속에서 전철을 타야 했고,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캐리커쳐들을 보고, 정말 전철에 탄 것 처럼 지나가는 창문을 바라봤다. 캐리커쳐들이 나에게 손짓 하기도 했고, 정말 사람들처럼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기도 했다. 

 

전철에서 내려서 카페에 들어가면, 옛날 문학책에서 읽은 문장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꺼진 눈빛으로 대화하는 젊은이들과,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카페 카운터에 있는 사람과 창 밖으로 보이는 길거리.

 

카페에서 나와 경성역으로 들어가면 민문만화로 그려진 경성역 속에 들어가 곳곳을 둘러보게 된다.

내가 정말 그 속 구성원이 된 것 처럼, 경성역 속 사람들은 바삐 제 갈 길을 가고 나레이션에 맞춰 상황이 진행된다.

 

정말 1930년 경성의 일상 속을 걷다 나온 것 같은 신기한 기분에, 책으로만 읽던 세상을 정말 겪는 것 같은 벅참이 감동적이었다고 표현해도 부족하다. 

 

만문만화 작가들은 검열로 인해 삭제되거나 지워진 사건들을 상상하며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가상현실 속에서 역사 속 사라진 이야기들을 연결했다.

 

만문만화 속에 들어온 것 처럼,[모던--껄의 장신운동], [황금광시대] 등의 사회 풍자적 장면들도 군데군데 들어있었다.

 

경성역을 마지막으로 다음 장면에는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사건과 그 사건이 언론탄압으로 검열된 장면이 펼쳐진다. 올림픽에서 달리는 손기정 선수의 모습과, 일장기 검열 사건이 신문에 찍히는 과정을 보면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정신차려야 한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구보, 경성 방랑>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면이 순간 포개졌다가 이내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이동하며 100년의 도시공간과 일상적 사건을 고유의 방식으로 체험함으로써, 구보씨 이야기와 오늘날 우리 사회 모습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 한다.

(- 브로슈어 설명 中)

 

조선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죄행을 지적하는 글, 당시 총독부에 의해 삭제조치 됨

 


 

#Scene 5: 수장고의 기억: 일민컬렉션

 

 

건축가 표창연이 기획한 전시.

일민미술관 수장고에 오랜시간 보관되있던 조선의 공예품과 민예품이 마치 '소풍'을 나온 것처럼 놀이동산을 본뜬 진열대 속에서 노닌다.

 

회전목마, 회전그네, 회전관람차,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고미술품이 과거 조선의 장인과 식민지 조선 속 민중의 체취를 지금 우리의 삶과 연결된, 가까운 친구처럼 다가온다.

 

 

입구에는 DJ 하성채의 만요 리믹스 메들리가 재생된다.

만요란 일명 코믹송(Comic Song)으로 1930년 일제강점기의 발흥해 익살과 해학을 담은 우스개 노래이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웃음을 유발시키는 요소를 포착해, 만문/만화/만시 등과 더불어 식민지 조선인들이 잃지 않았던 희극적 정서를 전달하는 노래 장르이다.

 

그냥 지나치면 소규모의 골동품 전시처럼 지나칠 수 있는 전시였지만, 당시의 시대 속 우리의 정서를 잊지 않기 위해 얼마나 조선 민중들이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공감하며 바라보자 그 고미술품들은 슬픔을 딛고 웃으며 우리를 마주하는 작은 도깨비들처럼 보였다.

 

옛 공예품의 표면에 남겨진 민중의 흔적을 대면한 관객들은 100년의 시공간을 횡단하며 기록되고 보여지는 역사 이면에 자리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 브로슈어 설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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